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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몬드리안 - Pieter Mondri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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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er Mondriaan

 

Pieter Mondriaan

 

몬드리안의 출생과 어린 시절

 

몬드리안은 1872년 3월 7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부근의 위트레흐트 외곽 지역인 아메르스포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이자 아마추어 화가였으며, 큰아버지는 바르비종파와 유사한 헤이그 풍경화파에 속한 직업 화가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보수적이고 경건한 칼뱅파인 부친의 영향으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몬드리안이 14세경 그림에 재능이 나타나자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그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몬드리안의 화가로서의 시작

 

그는 미술 교사 자격증을 땄으나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암스테르담 국립아카데미에 입학했으며, 초상화나 풍경화 등을 팔아서 학비와 생활비를 댔습니다.

 

이 당시는 반 고흐의 영향을 받은 그림을 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1911년 인상파와 야수파의 그림을 접하면서 그의 작품이 변화하게 됩니다.

 

 

신지학의 영향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신지학을 접하면서부터입니다.

 

신지학은 눈에 보이는 대상이나 현상에 내재된 불변의 보편적인 ‘지혜’를 추구하는 학문으로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는 신비주의적 성향의 철학이었습니다.

 

몬드리안은 각각의 사물은 보편적인 본질이 내재되어 있으며 겉모습이 모두 다를지라도 내면의 본질은 조화로운 상태로 있다는 신지학의 개념에 매료되었습니다.

 

 

추상주의 시대

 

그 해 암스테르담 미술관에서 입체파 작품을 접하고 크게 감명받아 파리로 향했습니다.

 

입체파의 기하학적 양식을 받아들여 나무를 다양하게 변형시키는 시도를 하면서 추상주의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나무> 연작을 그리면서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캔버스에 옮기면서 색채는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였습니다.

 

 

삼원색과 신조형주의의 선언

 

1914년 아버지가 병에 걸려 그는 잠시 귀국했으나 그사이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몬드리안은 파리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수학자이자 신지학자인 쇤마커스와 교류하게 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추상 회화를 직선과 직각(수직선과 수평선)은 가방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요소이며, 삼원색(빨강, 노랑, 파랑)은 비존재함에 존재하며 3가지 기본 무채색(흰색, 검은색, 회색)은 명도를 조절하는 기본 요소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50대에 거의 이르러서 신조형주의를 완성했습니다.

 

1920년대 그는 파리로 돌아와 <신조형주의 선언>을 출간했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빨강, 노랑, 파랑의 마름모꼴 구성>, <검은 선의 구성>, <구성 No.2> 등을 완성했습니다. 몬드리안에게 그림은 비례와 균형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삶 자체도 작품과 같이 엄격하고 절제된 평생을 살았는데 자신의 작업실 벽면을 삼원색과 흰색, 검은색과 회색의 직사각형으로 꾸미고, 모든 가구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칠했다고 합니다.

 

꽃병엔 인조 튤립을 한송이 꽂아 놓았는데, 초록색 잎사귀를 견딜 수 없어서 흰 물감으로 칠해 놓았다고 합니다.

 

 

뉴욕 진출

 

그의 이론과 작품은 유럽 전역에 전파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는 여러 전시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후 1936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입체파와 추상 미술>이라는 전시를 하면서 미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의 그림을 모티브로 한 몬드리안 룩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뉴욕의 재즈, 역동적인 분위기에 흠뻑 빠진 몬드리안은 뉴욕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기본적인 조형요소를 간직한 채 보다 복잡해지고 경쾌해지며 리듬감을 장착하면서 완성도 있게 변해가게 되었습니다.

 

 

몬드리안의 마지막

 

그는 폐렴으로 <빅토리 부기우기> 작품을 미완으로 남겨둔 해 1944년 2월 1일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빨강, 파랑 및 노랑의 구성 ll ,1930>

 

 

몬드리안의 대표작

 

검정색과 직선, 삼원색으로만 이루어진 <빨강, 파랑 및 노랑의 구성 ll > 이 작품은 대중적으로 가장 몬드리안을 잘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비례와 균형이 불규칙하지만 조화로워서 여전히 패션, 예술, 기술 분야 등 다양한 분야 디자인의 기초가 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이 작품은 원래 나무를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나무를 나타내는 그림에서 점점 요소들을 제거해 나가다 보니 직선과 삼원색만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사진기 등 기계문명이 발달하면서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는 작업으로는 공감을 얻어내는 데에 한계가 있었고, 단순한 모사가 아닌 작가의 철학이 담긴 작품이 큰 호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과 면의 중요성을 연구했으며 독자적인 예술 사조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형태를 단순화 하고 색채를 제한하여 사물의 진리와 본질을 나타낸 것으로 이를 기하학적 구성으로 나타냄으로써 시작적으로 단순화시켜 차가운 추상으로도 불립니다.

 

 

몬드리안의 예술관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품을 '우주의 진리, 근원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릴때에 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에트 몬드리안은 데 스틸(De stijl, 신조형주의)을 주창한 추상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그는 회화에서 구상적, 재현적인 요소를 일체 포기하고 대상의 근원에 있는 질서와 균형을 구성 원리로 삼고, 모든 대상을 수평선과 수직선,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이라는 순수 기하학적인 형태로 변형시켰으며, 삼원색과 흰색, 검은색, 회색만으로 작품을 구성했습니다.

 

몬드리안은 바우하우스 화가들을 비롯해 유럽, 미국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사후 신조형주의 역시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몬드리안은 대상에 내재한 순수하고 본질적인 요소는 보편적인 회화 요소로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비롯해 이에 영향을 받은 다양한 추상주의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현대 미술에서 관객들을 멀어지게 했습니다. 

 

 

 

 

 

 

-출처-

Pieter Mondriaan https://fr.wikipedia.org/wiki/Piet_Mondrian

빨강, 파랑 및 노랑의 구성 ll ,1930

 https://en.wikipedia.org/wiki/Piet_Mondrian#/media/File:Piet_Mondriaan,_1930_-_Mondrian_Composition_II_in_Red,_Blue,_and_Yellow.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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