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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32. 모네 - Claude M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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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Monet

 

Claude Monet

 

클로드 모네는 인상파 양식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인상파'라는 명칭은 그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서 생겼습니다.

 

일생 변화하는 빛의 효과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한 가지 주제를 연작으로 그리곤 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수련 연작의 영향으로 '수련의 화가'라도 불리기도 합니다.

 

 

모네의 출생과 어린 시절

 

모네는 1840년 11월 14일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아돌프 모네는 식료품 장사를 했으며 어머니는 가수 출신이라고 합니다.

 

5세 때 가족이 노르망디의 르아브르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는데, 어린 시절 그는 학교생활의 규율을 답답해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소년

 

스스로 '감옥' 같다고 표현한 학교생활에서 도피한 수단은 그림 그리기였습니다.

 

그는 인물 캐리커쳐를 즐겨 그렸고, 바닷가의 풍경을 그리는 걸 특히 좋아했습니다.

 

변화무쌍한 노르망디 바닷가의 기후와 그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 어린 그를 사로잡은 것입니다.

 

 

가족의 지지

 

부모님과 이복누이 마리는 그가 그림 그리는 것을 지원하였으며, 다비드의 제자였던 장 프랑수아 오샤르에게 그림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외젠 부댕의 영향

 

중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풍경화가인 외젠 부댕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그는 모네의 화가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부댕의 권유에 따라 야외 스케치를 다니면서 모네는 평생을 추구하게 될 화풍, 즉 자연광선의 변화를 화폭 위에 옮기는 법을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혁신적인 방식

 

당시에는 풍경화를 그릴 때 야외에서 스케치만 하고 화실에서 그림을 완성했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인식하는 색채를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외로 직접 나가 그림을 그리는 부댕의 방식은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후일 모네는 부댕에게 자연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고 회상했습니다.

 

또한 일찍부터 동네 잡화점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전시하고 내다 팔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파리에서의 시작

 

1859년, 모네는 파리로 가 에콜 데 보자르에 등록했고, 화가들이 드나드는 아카데미 쉬스의 작업실에 드나들면서 카미유 피사로를 만났습니다.

 

또한 르누아르, 바지유, 시슬레 등과 교류하면서 후일의 인상파 그룹을 형성합니다.

 

 

알제리에서의 군 복무

 

1861년, 모네는 군에 자원입대하여 알제리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 그곳에서 받은 빛과 색의 인상은 그의 화풍을 결정짓는 계기가 됩니다.

 

제대 후 파리로 돌아온 모네는 아카데미 화가 샤를 글레르의 작업실에서 잠시 그림을 그리다 바르비종 근교의 샤이, 옹플뢰르, 르아브르, 페캉 등 시골에 머물며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모네는 1869년과 1870년 두 차례나 살롱전에서 낙선했지만, 그의 풍경 작품은 꾸준히 팔려 나갔고, 화단의 인정도 받았습니다.

 

 

대표작의 탄생

 

1872년, 르아브르 항의 풍경을 담은 대표작 <인상, 해돋이>가 탄생했습니다.

 

<인상, 해돋이>

 

화폭에 담긴 대상이 야외에서 나가는 순간을 재빠른 붓질로 담아낸 것으로, 사실적이고 명확한 형태를 띠지 않아 기존 화단의 일반적인 회화 방식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습니다.

 

 

앵데팡당 전

 

1874년 4월, 모네는 바지유, 피사로, 르누아르 등과 함께 살롱전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전시회를 열고, <인상, 해돋이>를 출품했습니다.

 

이 전시회가 앵데팡당전입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살롱전에서 낙선한 것들로, 신진 화가들이 살롱전의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새롭고 급진적인 화법으로 그린 것입니다.

 

 

비난의 중심에 선 앵데팡당 전

 

그러나 이들은 그림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집단이라는 화단의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인상파라는 말 역시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공격하며 부르던 말이었습니다.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

 

이 무렵부터 모네는 빛과 기후 조건에 따른 풍경의 변화를 포착하는 자신의 화풍을 확립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내 카미유, 아들 장과 함께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에 머물며 <아르장퇴유의 보트 경기>, <아르장퇴유의 개양귀비> 등을 완성했습니다.

 

 

인상파의 리더 모네

 

자연 현상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당시 유럽을 휩쓴 일본 판화 우키요에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는데, 그리하여 탄생한 작품이 <일본 여인>입니다.

 

<일본 여인>

 

이런 과정을 거쳐 모네는 인상주의 화법을 완성해 나갔고, 인상파의 리더로 여겨졌습니다.

 

인상파 전시회에도 꾸준히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모네의 인상파 탈퇴

 

모네는 1880년에 살롱전에 복귀한 뒤 인상파 전시회에는 출품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6월에는 최초의 개인전도 열었습니다.

 

그간 르누아르, 세잔 등이 탈퇴하면서 와해되어가던 인상파 전시회는 모네의 탈퇴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신인상파 시대

 

이후에도 종래 인상파 집단이 아닌 신진 화가들이 신인상파를 이루고 두 차례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모네는 1886년의 전시회에 참가했으나 여전히 자신만의 자연 탐구 방식에 매달렸습니다.

 

 

연작에의 열정

 

모네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상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하는 것을 일생의 탐구 과제로 삼았으며, 하나의 주제로 그리는 연작에도 열정을 쏟았습니다.

 

1877년 그는 파리 생라자르역 근처에 작업실을 임대하고, 생라자르 역 전경을 담은 8점의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연작의 시작입니다.

 

 

체계적인 그의 연작

 

이후 포플러 연작과 루앙의 대성당 연작 등을 통해 연작 기법을 체계화시켰고, 드디어 화가로서의 명성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모네는 자신이 추구하던 모든 것은 연작 그림에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동일한 빛 속에서의 순간적인 모습, 특히 사물의 겉모습을 각기 다른 효과로 표현한 일련의 연작을 완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수련 연작

 

모네의 가장 대표적인 연작은 수련 연작입니다.

 

<수련>

 

반 고흐가 해바라기의 화가라면, 모네는 수련의 화가라 불릴 만큼 일평생 수련 연작에 가장 큰 열정을 바쳤습니다.

 

만년에 시작된 수련 연작은 그가 죽을 때까지 제작되었고, 작품 수도 약 250여 점에 달합니다.

 

 

두 번째 결혼

 

모네는 1879년 아내 카미유를 잃고 알리스 오슈데 라는 여인과 재혼한 후 1883년 지베르니에 농가를 한 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페캉, 푸르빌, 바랑주빌 등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다 1890년대 지베르니의 집에 정착했습니다.

 

 

모네의 정원

 

1892년에는 집 옆의 작은 습지를 사들여 일본식 수중 정원을 만들고 자신의 타고난 예술혼을 정원 가꾸기에 쏟아부었습니다.

 

이 정원이야말로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지가 되었습니다.

 

수련이 연못을 뒤덮기 시작하자 모네는 정원에 틀어박혀 약 20여 년간 매해 수련을 그리는 데 몰두했습니다.

 

 

큰 호평을 받은 수련 작품

 

1909년에 열린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 중 절반이 수련이 핀 연못을 그린 것이었고, 이 작품들은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큼직한 수련과 연못, 일본식 아치형 다리가 자리한 정원 풍경을 그린 모네의 작품은 가히 서양식 '도원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네는 이 전시회를 일컬어 '일상에서 탈피한 전시회'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대형 수련 그림 제작

 

1914년, 모네는 친구 조르주 클레망소의 권유로 관람자를 감쌀 만큼 거대한 화폭을 온통 수련으로 뒤덮는 대형 수련 그림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6피트 높이의 캔버스를 이동식 이젤 위에 올려놓고 작업할 수 있는 거대한 작업실을 손수 짓고, 10여 년간 그곳에 틀어박혀 대형 수련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그중에서 8점을 선택하면서 수련 연작이 완성되었습니다.

 

 

작품과 바꾼 시력

이 엄청난 작업을 하는 동안 모네의 시력은 점차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1923년에는 백내장 수술까지 받았는데, 더 좋은 안경만 나온다면 백 살까지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할 만큼 죽기 직전까지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붙태웠습니다.

 

 

모네의 마지막

 

1926년 12월 5일, 모네는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죽기 전 클레망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다만 우주가 나에게 보여 주는 것을 보고 그것을 붓으로 증명하고자 했을 뿐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대형 작품

 

모네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세계대전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수련 연작을 국가에 기증할 의사를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완성되었음에도 작업실에서 옮기지 못하게 한 모네의 의사에 따라 이 작품들은 모네 사후 파리 튈르리 공원의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옮겨져 1927년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오랑주리 미술관>

 

 

 

 

 

 

 

 

 

 

-출처-

Claude Monet https://fr.wikipedia.org/wiki/Claude_Monet

<인상, 해돋이> https://fr.wikipedia.org/wiki/Claude_Monet#/media/Fichier:Claude_Monet,_Impression,_soleil_levant.jpg

<일본 여인> https://fr.wikipedia.org/wiki/Claude_Monet#/media/Fichier:Claude_Monet-Madame_Monet_en_costume_japonais.jpg

<수련> https://fr.wikipedia.org/wiki/Claude_Monet#/media/Fichier:Monet_-_Seerosen_1906.jpg

<오랑주리 미술관>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8/89/Claude_monet%2C_Ninfee_e_Nuvole%2C_1920-1926_%28orangerie%29_0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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