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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34. 모리스 - William Mo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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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Morris

 

William Morris

 

윌리엄 모리스는 화가, 디자이너, 건축가이자 작가, 시인이었으며, 사회주의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나 그가 추구한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누구나 인간답게 살고 누구나 아름다운 환경에서 일상적으로 예술을 누리며 사는 것, 이에 따라 그는 최초로 '장식 예술' 개념을 고안하였고, 벽지, 가구, 스테인드글라스 등 생활에 디자인을 도입했습니다.

 

그가 일으킨 미술 공예 운동으로 현대적인 '디자인'의 개념이 탄생했다고 여겨집니다.

 

 

윌리엄 모리스의 출생과 어린 시절

 

윌리엄 모리스는 1834년 3월 24일 영국 에식스 주 월섬스토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런던의 증권 중개인으로, 전형적인 영국 부르주아였습니다.

 

그는 월섬스토우의 전원에 위치한 대저택에서 11명의 형제들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그는 성년이 된 이후부터 아버지의 신탁으로 매년 900파운드의 수입이 생겼으며, 이로써 하고 싶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모리스

 

후일 모리스는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안락하게 자란 자신의 삶을 하층민의 삶과 비교하고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다양한 지적 관심과 고전 교육, 그로 인한 감수성, 자연미를 살린 공예 디자인 등은 그가 자란 환경에서 기인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퇴학당한 모리스

 

모리스는 고향에 있는 사립 초등학교를 거쳐 1848년 사립 기숙학교인 말보로 칼리지에 입학했지만, 학내 분규에 가담하면서 퇴학당했습니다.

 

이후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다 1853년 옥스퍼드 대학 엑서터 칼리지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에드워드 번존스와의 우정

 

옥스퍼드 칼리지에서 그는 화가 에드워드 번존스와 평생에 걸친 우정을 쌓았고, 동시대 예술 비평가인 존 러스킨의 이론에 몰두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라파엘 전파에 가입하여 예술 운동을 함께 전개했습니다.

 

(라파엘 전파, Pre-Raphaelites Brotherhood, 윌리엄 홀먼홀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등 젊은 화가들이 결성한 단체. 고전을 모방하거나 감상적인 영국 미술에 반발하여 라파엘로 이전처럼 자연에서 겸허하게 배우는 예술을 표방했습니다. 예술 비평가 존 러스킨이 이들을 지지했습니다.)

 

 

예술가로 살기로 결심

 

모리스는 영국의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성직자가 되려던 꿈을 접고 예술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회화 작업에 매진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건축회사에 취직했으며, 번존스는 로세티의 조수로 회화 작업을 했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작품 활동을 하는 시간이 잦아지면서 그는 건축회사를 그만두고 회화 작업에 매진했습니다.

 

 

벽화 작업

 

<기네비어 여왕>

 

1857년, 세 사람은 옥스퍼드 유니언 벽에 토머스 맬러리의 <<아서왕의 죽음>>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지금까지 모리스가 그린 회화 작품으로 전하는 것은 이때 그린 <기네비어 여왕>이 유일합니다.

 

 

제인 버든과의 결혼

 

그는 모델을 서 준 제인 버든과 2년 후 결혼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건축적 이상을 담은 신혼집 레드 하우스를 지었는데, 중세 고딕품의 외관에 간결한 구조로 지어진 이 건물은 현대 건축 디자인의 효시로 여겨집니다.

 

이후 그는 로세티와 제인 버든의 불륜으로 괴로움을 겪다 1874년 이혼하고 로세티와도 결별했습니다.

 

 

회사 설립

 

1861년, 모리스는 로세티, 포드 매독스 브라운, 웨브, 측량기사 P.P 마셜, 회계사 찰스 포그너와 함께 건축 및 디자인 회사 모리스 - 마셜 - 포그너 사를 설립했습니다.

 

미술가의 손으로 모든 생활용품을 아름답게 만들어 대중적으로 보급한다는 취지로 설립한 이곳은 스테인드글라스, 벽지, 가구 등 모든 실내장식 미술을 다루는 최초의 현대적인 디자인 회사였습니다.

 

 

회사에서의 독립

 

회사는 나날이 번창했으며, 모리스는 1875년 동업자들로부터 회사를 완전히 사들여 모리스 상회로 이름을 바꾸고 독자적으로 운영했습니다.

 

그러면서 벽지와 직물 디자인을 주력으로 취급하였고, 모리스를 비롯해 번존스와 웨브가 디자인에 참여했습니다.

 

 

강연의 시작

 

1877년에는 <장식 예술에 관하여>라는 강연을 시작했으며, 1882년 <<예술을 위한 희망과 두려움>>이라는 저술을 발간하면서 생활 속 예술 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자연주의 디자인

 

모리스는 벽지나 태피스트리, 카펫,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디자인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최초의 벽지 디자인은 1862년에 데이지, 과일, 석류 등을 디자인한 것입니다.

 

양배추와 포도를 표현한 태피스트리

 

그는 이후 꽃, 열매, 과인, 나뭇잎 등의 반복적인 패턴을 이용한 자연주의적인 디자인을 발전시켰습니다.

 

1875년부터 식물 염료를 실험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아름다움 염색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실용을 추구하는 디자인

 

그는 사치를 지양하고 일상생활과 밀착된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기존 영국 귀족들의 집에 놓인 가구들을 '부르주아의 사치에 찌든, 정체성을 알 수 없는 괴물'이라고 경멸했으며, 간소하고 실용적인 가구들을 디자인했습니다.

 

 

현대적인 건축

 

보스턴 트리니티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건축에 있어서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중세 고딕 예술을 바탕으로 단순하고 현대적인 건축 디자인을 했습니다.

 

 

근대 디자인 운동

 

1880년대 이후 모리스의 영향으로 각종 공예 디자인 단체들이 생기면서 근대 디자인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 (Arts and Crafts Movement)이라고 합니다.

 

모리스는 산업혁명의 성과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수작업을 지향했고 모리스 상회에서 나오는 제품들은 이에 따라 수공예 제작 기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르누보의 기초가 된 모리스

 

근대 디자인 운동 역시 비인간적인 기계 생산에 반대하고 중세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리스의 사상은 시대착오적이기는 했으나, 그의 직물 디자인들과 사상은 현대 디자인 혁명을 일으켰으며, 아르누보(Art Nouveau)가 성립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가진 모리스

 

예술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모리스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을 리 없었습니다.

 

1876년, 터키의 지배 아래 있던 발칸 반도에서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반란이 일어나자 터키 정부가 불가리아 기독교인을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유럽 전역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었으나 영국 정부는 터키와 연대하여 제정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터키를 지지했습니다.

 

 

정치에 뛰어들다

 

모리스는 <데일리 뉴스>에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라는 논고를 실어 보수당의 정책을 비판하며 자연스럽게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1883년 그는 민주동맹에 가입했으며, <<알기 쉬운 사회주의>>를 집필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향

 

그러나 국가적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향한 그와 민주동맹은 노선이 달랐습니다.

 

이에 그는 사회주의 동맹을 결성하고 기관지 <커먼월>을 편집했으며, 여기에 유토피아 소설의 고전인 <<에코토피아 뉴스>>를 연재했습니다.

 

 

정치에서 물러난 모리스

 

1886년 무렵부터 실업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영국 각지에서 노동자들의 가두시위가 일어났는데, 이듬해 런던 트가팔가  광장에서 일어난 시위를 군경이 폭력적으로 진압해 유혈 사태가 일어나자 사회주의 운동에 무력감을 느끼고 정치에서 물러났습니다.

 

 

문학에서의 명성

 

모리스는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1860년대 <제이슨의 생애와 죽음>, <지상의 낙원>을 출판하면서 시인으로 명망을 얻은 바 있었습니다.

 

켈름스콧 프레스 회사 로고

 

문학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 모리스는 1891년에 인쇄소인 켈름스콧 프레스를 설립하여 중세 양식으로 화려한 삽화가 들어간 문학 작품들을 제작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인쇄본

 

1896년에 만들어진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번존스의 목판화 87점이 들어가고 모리스가 본문 테두리 장식을 디자인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3대 인쇄본 중 하나로 꼽힙니다.

 

 

모리스의 마지막

 

그는 모리스 상회를 설립할 당시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일했는데, 일생 다양한 활동으로 자신 안의 열정을 소진했기 때문인지 이 무렵에는 건강을 많이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1896년 노르웨이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직후 10월 3일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영국인들은 그를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르네상스인으로 꼽습니다.

 

 

 

 

 

 

 

-출처-

William Morris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Morris#/media/File:William_Morris_age_53.jpg

<기네비어 여왕>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Morris#/media/File:William_Morris_001.jpg

양배추와 포도를 표현한 태피스트리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Morris#/media/File:Morris_Cabbage_and_Vine_tapestry_1879.jpg

보스턴 트리니티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Morris#/media/File:David's_Charge_to_Solomon,_by_Burne-Jones_and_Morris,_Trinity_Church,_Boston,_Massachusetts.JPG

켈름스콧 프레스 회사 로고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Morris#/media/File:KelmscottPressColophon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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