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e Courbet
귀스타브 쿠르베는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낭만주의 회화에 반발하여 근대의 일상을 사실주의적 필치로 그려 낸 '사실'의 위대한 혁신자로 평가됩니다.
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묘사할 것'이라는 주장 아래 일상을 미화나 왜곡 없이 그렸으며, 이로 인해 시각에 근거한 근대 미술이 탄생했습니다.
쿠르베의 출생과 어린 시절
쿠르베는 1819년 6월 10일 스위스와 국경을 접한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 오르낭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엘레오노르 레지는 대지주로, 그의 미술 활동을 아낌없이 후원해 주었으며, 종교적 권위를 부정하는 공화주의자였던 할아버지에게 사상적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르낭의 중등학교와 왕립 콜레주 브장송 등을 거치며 신학과 법률을 공부했으나 그림에 뜻을 두고 다비드의 제자였던 플라줄로에게 그림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아버지의 적극적 지지
이때 그가 화가가 되겠다는 뜻을 밝히자 아버지는 격려하며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1839년에 파리로 올라와 슈토이벤의 아틀리에와 아카데미 쉬스에 들어갔으나 전통적인 교육에는 별다른 관심을 느끼지 못했고, 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사를 하며 독학으로 회화 기교를 습득했습니다.
다양한 시도
초기에는 성서나 문학 작품 속 내용을 표현하거나 고향 풍경을 그리는 등 다양한 작품을 그렸으며, 1844년 <검은 개를 데리고 있는 쿠르베>로 살롱전에서 입상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수년간 살롱전에서 연이어 낙선했고, 비평가들에게 좋지 않은 평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쿠르베는 점차 급진적인 미술가, 작가, 비평가 사이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쿠르베의 주장
이들은 역사화나 신화 소재를 다룬 그림, 낭만주의적 필치를 비판했으며, "그림은 구체적인 예술이며, 현실적이고 존재하는 것을 다루어야 한다."라는 쿠르베의 주장에 동조했던 것입니다.
이들이 모이던 쿠르베의 작업실 근처 술집은 농담 삼아 '사실주의의 사원'이라고 불렸습니다.
유럽 전역에 분 혁명의 바람
1848년 2월 혁명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 유럽 전역이 혁명의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사회주의 사상이 대두되었고, 자유주의의 열기가 프랑스를 지배했습니다.
혁명에 참여한 쿠르베
쿠르베 역시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르 살뤼 퓌블릭 (le Salut Public)>>의 표제 그림을 그리며 혁명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사회주의자 프루동을 비롯해, 보들레르, 도미에, 코로, 상플뢰리 등과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혁명 화가
2월 혁명으로 살롱전의 분위기로 일신되어 그해 쿠르베는 <오르낭의 저녁 식사 후>로 살롱전 2등 상을 수상했습니다.
들라크루아는 이 작품을 보고 그를 '혁명 화가'라고 극찬했습니다.
논란이 된 그의 작품
1850년, 쿠르베는 대작 <오르낭의 매장>을 살롱전에 출품했습니다.
이 작품은 폭 6미터가 넘는 엄청난 크기, 서사성과 주인공이 없다는 점에서 평론가들을 당혹시켰습니다.
심지어 쿠르베의 친구들조차 초라한 농민들을 그대로 드러낸 이 그림을 저속하고 너절하다며 비판했습니다.
근대 회화의 시작
이 작품은 기존의 역사화가 추구하던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정형화된 인물을 그리던 당대의 관습에서 벗어나 장례식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개별 인물들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것이었습니다.
즉 '사실주의를 태동'시키고 '낭만주의를 매장'한, 근대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비판받는 그의 작품들
<오르낭의 매장>에 뒤이어 발표된 <돌 깨는 사람들>, <마을 처녀들(시골소녀에게 적선하는 처녀들)>, <체질하는 사람들>, <목욕하는 여인들> 역시 인물들을 미화하지 않고 대담하게 묘사하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특히 <목욕하는 여인들>은 여인들의 누드를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는데, 나폴레옹 3세는 격분한 나머지 이 그림에 채찍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쿠르베를 지지했던 들라크루아 역시 이 작품에는 분개했다고 합니다.
거리낌 없는 성격의 쿠르베
쿠르베는 공공연히 정치적 견해를 표방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사회 참여적인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실적으로 농촌의 생활을 묘사한 일련의 작품들로 곧 정부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부의 걱정
2월 혁명으로 루이 필리프가 물러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정부는 제2의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당시에는 농촌을 다룰 때 목가적인 풍경, 휴식의 이미지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쿠르베는 영세 농민들의 초라하고 고생스러운 삶이 담긴 그림을 그렸고, 이는 정치적 논조를 띠고 있다고 여겨지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전 검열
따라서 그는 이후 정부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결국 1855년 만국박람회에 전시될 그림의 스케치를 보여 달라는 사전 검열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분개한 쿠르베는 만국박람회에 대항하여 근처에 임시로 전시관을 만들고 사실주의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쿠르베의 대표작
1854년, 쿠르베는 또 다른 대표작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를 그렸습니다.
쿠르베가 몽펠리에에 도착했을 때 후원자인 알프레드 브뤼야가 하인과 개를 대동하고 마중 나온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일상의 평범한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그 평범한 때문입니다.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그림
흙으로 더러워진 신발, 평범한 여행 복장, 이젤과 화구를 짊어진 쿠르베의 모습 어디에도 예술가적 면모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일반적인 여행자의 모습일 뿐이며, 배경 역시 그저 시골길일뿐입니다.
평범한 진실
일상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는 진실을 담아 묘사한다는 쿠르베의 관점이 완숙의 경지에 달한 작품으로, 귀족의 취향에 부합하지 않고 '평범한 진실'에 주목한 혁명적인 그림이었습니다.
쿠르베의 명성은 이 작품으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다양한 소재를 다룬 그의 그림
1860년대와 1870년대에 그는 초상, 정물, 풍경, 동물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습니다.
<센 강변의 아가씨들>, <세상의 근원>, <잠>, <나부와 앵무새>, <검은 모자를 쓴 부인>, <사냥개>, <사슴의 은신처> 등이 이 시기의 작품입니다.
<센 강변의 아가씨들>
<센 강변의 아가씨들>은 공공장소인 센 강변에서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는 두 여인을 그린 그림으로, 그림에 담긴 성적 의도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어났습니다.
그러나 쿠르베는 이에 대해 "설령 부적절해 보인다 할지라도 사실을 그대로 그린 것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충격적인 쿠르베의 작품들
<잠> 역시 나체로 잠을 자고 있는 두 여성의 동성애를 암시하는 다양한 상징들이 등장하며, <세상의 근원>은 아예 여성의 성기가 화면 전체에 드러나 있는 등 당대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충격적인 작품입니다.
전쟁과 변화
1870년, 쿠르베는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으나 이를 사양했습니다.
그해 프랑스 - 프로이센 전쟁이 일어났고, 나폴레옹 3세가 폐위되면서 제2제정이 붕괴되었습니다.
이듬해 파리 코뮌이 수립되자 그는 정치적 신념에 따라 코뮌 정부에 가담했으나 이들의 과격한 행보에 질려 한 달 만에 발을 빼고 말았습니다.
감옥에 가게 된 쿠르베
코뮌 정부가 무너지면서 그 역시 기소되어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석방 후 오르낭으로 돌아갔으나 마을 주민들이 그를 꺼리는 데다 또다시 정부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는 시련을 겪으면서 결국 1873년 스위스로 망명했습니다.
쿠르베의 마지막
쿠르베는 1877년 <알프스의 파노라마 전경>을 미완성으로 남기고, 망명지인 스위스 라투르드펠즈에서 사망했습니다.
그의 명성은 사후 더욱 높아졌고, 완전히 새로운 예술관을 제시함으로써 근대 회화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게 됩니다.
-출처-
Gustave Courbet Gustave Courbet — Wikipédia (wikipedia.org)
<돌 깨는 사람들> Gustave Courbet — Wikipédia (wikipedia.org)
<오르낭의 매장> Gustave Courbet — Wikipédia (wikipedia.org)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Gustave Courbet — Wikipédia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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