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nri Julien Félix Rousseau
앙리 루소의 출생과 어린 시절
앙리 루소는 1844년 5월 21일 프랑스 북서 지방의 라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가난한 배관공이었는데, 5세 때 아버지가 파산하면서 궁핍한 생활을 하며 자주 이사를 다녔습니다.
20세 때 지원병으로 군대에 들어가 근무했으며, 아버지가 죽고 24세의 나이로 가장이 되자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제대하여 파리의 세금징수소에 취직했습니다.
세무공무원 앙리 루소
루소는 미술에 대한 어떤 교육도 받은 적이 없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에도 약 10여 년간 세무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일반화된 원근법이나 인체 비례 등의 기법을 거의 무시했으며, 모든 요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묘사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꼼꼼하게 묘사되었으나 뻣뻣해 보이며, 다른 대상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동떨어져 보이는데, 이런 모습들은 환상세계를 표현한 듯한 기묘한 배경과 어우러져 더욱 기이하게 보여 사람들의 조소를 샀습니다.
혹평을 받은 그의 전시회
때문에 그는 전시회에 처음 출품한 뒤 오래도록 '두아니에(le douanier, 세무공무원)'라고 비꼼을 당했으며, 말년에 이르러서도
"재미있는 루소 씨는 나무나 생강빵으로 만든 우스꽝스러운 모양의 장난감 인형을 떠올리게 하는 유치한 미술에 대한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라는 혹평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루소
루소는 40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림을 모사하며 독학으로 그림을 습득했습니다.
그는 병에 걸린 아내와 7명의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주 60시간씩 일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1888년 아내 클레망스가 결핵으로 죽은 뒤 직장을 그만두고 화가로 전업하기까지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시달렸습니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의 시작
루소는 1885년 작업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작품을 살롱전에 출품했습니다.
1886년부터 앵데팡당전에도 꾸준히 작품을 출품했으며, 1905년부터 약 3년간 살롱 도톤 전에도 참가했습니다.
악평의 연속
그러나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을 '정식 교육을 받지않으느 순진한 아마추어의 작품'이라고 무시했습니다.
특히 1886년 앵데팡당전에 전시한 <카니발 저녁>을 본 관람자들이 그 앞에서 한참 웃다가 발길을 돌렸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악평은 계속 되었습니다.
전시장에서 쫓겨난 루소
앵데팡당전은 애초에 미술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음을 표방하면서 참가금만 내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전시회였습니다.
그러나 1893년 젊은 작가들이 그와 함께 작품을 전시할 수 없다면서 심사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1907년 살롱전에서는 장식미술을 전시하는 하급 전시장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기까지 했습니다.
혹평속에도 자신감 있던 루소
그러나 루소 자신은 스스로를 프랑스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 가운데 하나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자부심은 1890년에 그림 <나, 초상 - 풍경>이라는 자화상에서 잘 드러납니다.
파리의 풍경을 배경으로 팔레트를 든 자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여기에서 그는 아카데미의 전통인 '예술가의 초상'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비웃음의 대상이 된 루소
그는 당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던 아카데미 화가들을 부러워했으며, 자신의 기법이 아카데미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색채, 비례, 원근법 등 아카데미적인 기교는 물론, 화가로서의 남다른 독창성도 인정받지 못한 와중 순진할 만큼 진지했던 그의 태도는 더욱 비웃음을 샀습니다.
그럼에도 루소는 포기하지 않고 차츰 본업보다 작품 활동을 늘려 나갔습니다.
앵데팡당전에서 활동하는 아방가르드 그룹에 몸담으로 고갱, 쇠라, 마티스, 폴 시냐크 등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일상생활을 그린 화가
루소는 대표작으로 뽑히는 정글 그림을 비롯해 <풋볼을 하는 사람들>, <세관>, <생 니콜라 부두에서 본 생 루이 섬의 풍경>과 같은 주변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주의 작품 - 닮지 않은 인물화로 거절당한 루소의 그림
<화병>등의 정물, <여인> 같은 인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는 당대 화가들의 관심사였던 빛이나 색채 표현, 이미지의 왜곡 등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사실주의자라고 생각했던 만큼 대상을 꼼꼼히 묘사했으나, 현실 속 대상과 닮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인물과 닮지 않은 데다 성격 묘사조차 되지 않는다며 번번이 주문자에게 거절당했습니다.).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미친 그의 작품
단순화된 형태의 대상들은 비례 자체가 무시된 데다 따로 오려 붙인 듯해 그는 세부 묘사에만 치중하다 전체의 조화를 놓친다는 혹평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성 방식은 이후 콜라주 기법에, 환상과 현실이 혼재되어 있는 공간 표현은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세무공무원 퇴직
루소는 1893년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고자 세관을 퇴직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야심만만한 대작 <전쟁 혹은 불화의 기마 여행>을 앵데팡당전에 출품했습니다.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은 그의 작품
그의 작품들은 그제야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여신 벨로나 같은 여성이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동물을 타고 시체 위를 넘어가고 있는 이 작품은 전쟁의 이미지를 비극적이고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그는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는데, 아방가르드 그룹의 화가들은 그의 작품에 대해 '이전에 보았던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은 새로운 양식의 작품'이라고 호평했습니다.
이 무렵의 또 다른 대표작은 <잠자는 집시>입니다.
근대의 대표적 그림 중 하나로 꼽히는데, 단순한 구성, 섬세하게 표현된 색과 선, 현실감이 느껴지는 그러나 상상의 공간으로 보이는 배경이 한데 어우러져 신비함들 전달합니다.
루소의 대표작
그러나 무엇보다도 루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은 원시적인 정글 풍경을 다룬 것입니다.
1891년 발표된 <열대 폭풍우 속의 호랑이> 이후 말년에 발표한 <굶주린 사자>, <뱀을 부리는 사람>, <즐거운 어릿광대들>, <사자와 물소의 싸움>, <이국적 풍경> 등의 작품들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화면 전체를 무성하게 뒤덮은 원시림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도발적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응시하는 동물들은 보는 이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기며 강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후에 나비파의 일원이 되는 펠릭스 발로통은 <열대 폭풍우 속의 호랑이>를 보고 이런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는 주변의 모든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불시에 먹이를 덮치는 호랑이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이 그림은 회화의 알파와 오메가다."
말년에 인정받은 루소의 작품들
말년에 이르러서야 피카소, 브라크, 브랑쿠시 등 젊은 미술가들을 비롯해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그의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면서 루소의 영향력은 조금씩 커졌습니다.
1908년에는 피카소가 그를 위한 연회를 개최하면서 그는 그토록 원하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10년에는 독일의 미술가가이자 수집가인 빌헬름 우데가 그에 대한 논문을 최초로 발표하면서 그를 소박파로 규정했습니다.
입체파의 선구자 루소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사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 그는 입체파의 선구적 존재로 여겨지며, 순수하고 단순하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 세계는 20세기에 천진난만한 그림이 부활하는 시초를 제공했다고 평가됩니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반 고흐 이후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독한을 한 소박파라고 할 수 있다. 미술가는 더 이상 전통 안에 살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창조해야 한다."
루소의 마지막
루소는 1910년 9월 2일, 혈독으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1913년, 아폴리네르가 기념사를 쓰고 브랑쿠시가 새긴 비석이 세워져 그를 기렸습니다.
-출처-
Henri Rousseau https://fr.wikipedia.org/wiki/Henri_Rousseau
<나, 초상 - 풍경> https://fr.wikipedia.org/wiki/Henri_Rousseau
<풋볼을 하는 사람들> https://www.posterlounge.dk/p/402347.html
<열대 폭풍우 속의 호랑이> https://en.wikipedia.org/wiki/Tiger_in_a_Tropical_Storm
'아티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 파울 클레 - Paul Klee (0) | 2022.12.23 |
---|---|
24. 디에고 리베라 - Diego Rivera (0) | 2022.12.08 |
22. 폴 고갱 - Paul Gauguin (0) | 2022.11.29 |
21. 모딜리아니 - Amedeo Modigliani (0) | 2022.11.24 |
20. 조르주 쇠라 - Georges Pierre Seurat (0) | 2022.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