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y Lichtenstein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출생과 어린 시절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1923년 10월 27일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부동산 전문 업자로 중산층 집안에서 공립학교를 다니며 평범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취미로 유화를 그리기도 하였으며, 디자인과 재즈에 관심이 있어 1939년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개설된 미술 강좌를 수강하기도 했습니다.
강의, 상업 미술 등의 활동
1940년, 리히텐슈타인은 오하이오 주립대학 미술학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재학 중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병역의무를 이행한 후, 1949년에 돌아와 대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뉴욕 주립대학 등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쇼윈도 디스플레이 등 상업 미술 활동으로 생계를 꾸리면서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은 도시 풍경이나 인물을 그리는데 별 관심이 없었으며, 순수 추상주의에도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3살 아들로 인한 팝아트의 시작
다양한 시도 끝에 그는 팝아트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1960년대 이후 만화책과 잡지의 이미지를 확대, 재현하는 방식의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늘 미국 사회와 그를 구성하는 상징적 요소들에 관심이 많았는데, 두 아들이 디즈니 만화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미국 문화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의 세 살 아들이
“아빠는 미키마우스 그림 같은 건 잘 그리지 못할 거예요”
라고 하자 리히텐슈타인은 충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아들들이 좋아하는 미키 마우스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화가 예술이 된 순간
만화 등의 대중문화는 예술적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당시의 분위기로는 그의 이런 생각은 혁신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미키마우스, 도날드 덕, 벅스 버니, 미니 마우스 등 디즈니 만화 주인공을 다양한 형태로 변형해 그려주면서 이를 회화로 발전시킬 방법을 계속 연구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은 1961년 <이것 봐 미키 Look Mickey>를 발표하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의 랜드마크가 된 벤데이 점
그는 진짜 만화책처럼 말풍선에 대사를 넣었으며, 상업 인쇄물을 확대했을 때 생기는 점(벤데이 점)을 이미지 표현에 활용했습니다.
이 효과로 작품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만드는 동시에 관객에게 연상 작용을 일으켜 작품에 상징성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벤데이 점을 표현할 때 일일이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구멍이 뚫린 판을 이용해 색점들은 “대량생산” 하게 됩니다.
대량 생산된 대중적인 이미지를 대량 생산 기법으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결한 회화 예술작품과 대중 미술로 이분화되어있던 예술시장의 경계를 깨고 새로운 현대미술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것 봐 미키>를 제작했을 당시, 앤디 워홀 역시 대중 만화를 이용해 회화작품을 생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리히텐슈타인과 워홀 두 사람 모두 그 당시 최고의 갤러리 딜러였던 레오 카스텔리를 찾아갔는데 그는 워홀의 그림은 거절하고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다음 해 개인전을 열어주게 됩니다.
이후 그는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벤데이 점으로 인해 화가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고 차갑고 기계적인 느낌을 풍겨 완벽한 팝아트의 모습을 보여준 반면 워홀의 작품에는 아직 붓놀림의 흔적이 남아있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불티나게 팔린 그의 작품
레오 카스텔리의 선택을 받은 리히텐슈타인의 전시회는 전시 시작 전부터도 이미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작품 또한 갤러리 벽에 걸기도 전에 모두 판매되어 나갔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잊어! 날 잊으라고!>, <난 알아, 브래드>, <걸작>과 같이 만화적인 표현을 그대로 활용한 작품은 물론 <세탁기>, <소파>, <냉장고> 등 상업 제품을 광고처럼 만든 작품도 제작했습니다.
이런 리히텐슈타인의 행보는 모든 대상을 숙고 없이 만드는 상업 문화, 상업 미술을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순수 미술가들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붓 자국만 신성하게 여기는 순수 미술만 예술이 아니고 대중이 좋아하는 어떤 것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며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루다
<타카타카>, <꽝!>, <발포했을때> 등은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작품들로 대중과 소통하기도 했습니다.
<꽝!>은 리히텐슈타인 작품 중 큰 사이즈의 작품으로, 캔버스 두 개를 붙인 이 면화 형식의 작품입니다. 현재는 영국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본인의 철학을 보여주는 작품
1966년에는 추상표현주의의 종말을 선언한 <노랑과 초록 붓자국>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은 노란색과 초록색으로 아무렇게나 붓을 그은 듯 보이는데, 여기서 붓놀림은 잭슨 폴락이 창안한 액션 페인팅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는 이 붓 자국을 무의미한 것으로 보이게 하고 4컷 연재만화를 찍는 인쇄기법으로 복제하여 진부한 예술, 관습 등을 비판하는 자신의 철학을 표현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의 영향력
리히텐슈타인은 앤디 워홀과 함께 대표적인 팝아티스트입니다.
그는 광고나 만화책의 이미지, 디즈니 캐릭터 등을 이용해 독자적인 그만의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대량 생산과 상업 미술, 소비문화로 대표되는 미국의 문화를 가장 미국적인 방법으로 보여 준 아티스트로, 예술과 비예술,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아티스트입니다.
또한 고급과 저급을 가르는 듯한 미술의 위계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1997년 9월 29일 그가 74의 나이로 자택에서 사망할 때까지 미국 내의 다양한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과 개인전이 열렸으며, 유럽, 일본 순회전도 열리는 등 팝아트 작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출처-
Roy Lichtenstein https://www.biography.com/artist/roy-lichtenstein
<이것 봐 미키 Look Mickey> https://en.wikipedia.org/wiki/Look_Mickey
<꽝!> https://www.tate.org.uk/art/artworks/lichtenstein-whaam-t00897
<노랑과 초록 붓자국> https://www.wikiart.org/en/roy-lichtenstein/yellow-and-green-brushstrokes-19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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