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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14. 살바도르 달리 - Salvador D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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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vador Dali 

 

 

Salvador Dali

 

 

살바도르 달리의 출생과 어린 시절

 

살바도르 달리는 1904년 5월 11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피게레스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달리는 7세 때에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천재이며 세계적으로 명성으로 크게 얻을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14세 때부터 바르셀로나 미술 학교에서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17세 때 마드리드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천재 달리의 반항

 

그는 17세에 이미 카탈루냐 지역의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을 정도로 다양한 화풍과 뛰어난 기교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스스로를 천재라고 여기고 있었으므로 금방 학교 교육에 실망했고 온갖 말썽을 부렸습니다.

 

성모 마리아상을 그리라는 과제에 저울을 그려 제출하고 ‘보통 사람들은 성모상에서 성모를 보겠지만 저는 저울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또한 새로 부임하는 교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질 없는 교수를 임용할 수 없다며 친구들을 선동해 시위를 하면서 1년 정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또 미술사 시험에서

 

‘이 답은 심사위원보다 내가 더 완벽하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답안을 제출할 수 없다’

 

고 답을 제출해 결국 1926년 퇴학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퇴학 이후 달리의 작품 활동

 

퇴학 이후 집으로 졸아온 달리는 인상파, 점묘파, 미래파, 입체파 등 여러 현대 미술 양식을 쫒는 다양한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잠재의식 속의 욕망, 꿈의 상징성 등에 대한 프로이트의 책들은 달리의 작품 활동과 자아실현에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28년 파리로 가서 초현실주의 화가나 시인들과 교류했습니다.

 

 

 달리의 영화 제작

 

그해 달리는 영화 <알달루시아의 개>의 구상을 시작했고, 그다음 해 완성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루이스 부뉴엘과 함께 제작한 것으로,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훗날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의 요청으로 스릴러 영화 ‘스펠바운드’를 찍을 때 꿈 시퀀스를 만들어줄 미술감독으로 히치콕과 함께 작업했으며 달리는 옥상, 피라미드, 무도회장, 도박장의 네 장면에서 커다랗게 확대된 가위가 커튼에 그려진 눈을 자르는 장면을 제작했습니다. 

 

극장이나 발레의 의상, 무대장치 등 상업미술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10세 연상의 유부녀와 사랑에 빠진 달리

 

파리에서 달리는 인생의 연인인 갈라를 만납니다.

 

초현실주의 그룹에 들어간 후 그 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인 폴 엘뤼아르를  만났고 엘뤼아르의 아내 갈라는 달리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여성이었고, 그가 <풀 엘뤼아르의 초상>을 완성할 무렵 그의 여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10세 연상에 유부녀였던 갈라와의 불륜으로 달리는 부친과 결별했습니다.

 

화가로서는 천재적이었으나 일상생활에서는 무능력자 같았던 달리는 갈라의 내조로 ‘지상에 발붙인 천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달리의 대표 작품

 

그 이후 달리만의 예술세계는 완전히 무르익었고 <기억의 지속>, <성적 매력의 망령-리비도의 망령>등 무의식 속 환상세계를 객관적이고 세밀하게 표현하는 수법과 기상천외한 이미지들을 조합한 작품들이 탄생했습니다. 

 

 

<기억의 지속>

 

<기억의 지속>

 

이 작품에서는 녹아 흐물거리는 시계들이 사막풍경에 널려있습니다.

 

저 뒤편은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 늘어진 시계는 달리가 꾼 까망베르 치즈에 대한 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하고 두통에 시달리던 달리가 작업실을 나가며 불을 끈 순간 두 개의 흐물거리는 시계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고 그중 하나가 올리브 나무 위에 걸쳐져 있었다고 표현한 환영을 보고 순식간에 작품을 완성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초현실주의 작품이자 회화적으로도 완벽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의인화된 캐비닛>

 

<의인화된 캐비닛>

 

이 무렵 <의인화된 캐비닛>, <서랍이 달린 밀로의 비너스> 등 서랍이 등장하는 작품을 자주 그렸는데, 서랍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회화 이미지로 재현하기 위해 사용한 소재였습니다.

 

 

초현실주의의 대명사가 된 달리

 

1934년 달리는 <윌리엄 텔의 수수께끼>를 출품하면서 크게 알려져 유럽과 미국에서 초현실주의의 유행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달리는 초현실주의와 동의어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달리는 미국과 영국 등에서 전시회를 열고, 영화, 강연을 이어 나갔고 혁명적인 패션 발명품을 고안하며 오페라공연의 대사와 무대디자인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예술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프로이트를 열렬히 추종한 것으로 유명한 달리는 일생 단 한 번 그를 만났는데 그때 본인의 작품을 보여주며 프로이트적인지 물어보곤 했다고 합니다. 

 

 

뉴욕에 정착한 달리

 

갈라와 함께 뉴욕에 정학한 달리는 갈라를 모델로 한 그림도 많이 그렸는데 독특한 이미지를 창작하는 것 이상으로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뛰어나 종종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화가들과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독특한 광기와 별난 행동으로 ‘예술적 공감대를 얻기보다 주목받고 싶어 하는 미치광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1982년 89세의 나이로 갈라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이후 아주 불안한 말년은 보내게 됩니다.

 

 

달리의 마지막

 

은둔하여 자살 시도를 하는 등 불안정한 나날을 보내던 달리는 폐렴과 심장병 합병증으로 1989년 1월 23일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피게레스 극장 미술관 납골당에 안치되었으며, 재산은 모두 스페인 정부에 기증되었습니다. 

 

“내가 다른 초현실주의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나야말로 초현실주의자라는 것이다”

 

라는 그의 말로 알 수 있듯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천재라 불리는 스페인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토르 달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설을 토대로 잠재의식 속 환상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살아생전에 큰 명성과 막대한 부를 누렸으며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난 내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기애도 강하고 오만하며 갖가지 기행으로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출처-

Salvador Dali https://en.wikipedia.org/wiki/Salvador_Dal%C3%AD

<기억의 지속> https://en.wikipedia.org/wiki/The_Persistence_of_Memory

<의인화된 캐비닛> https://www.dalipaintings.com/the-anthropomorphic-cabinet.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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