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el Duchamp
마르셀 뒤샹의 출생과 어린 시절
마르셀 뒤샹은 1887년 7월 28일 프랑스 노르망디 작은 마을 블랭빌에서 태어났습니다.
뒤샹의 아버지는 공증인이었으며, 외할아버지는 해운업자인 동시에 판화가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에게 문학과 그림, 음악 등을 가르쳤습니다.
뒤샹은 6남매 중 셋째였으며 뒤샹 형제 중 4명이 미술가가 되었으며, 뒤샹이 학교에 다닐 무렵 큰형 둘은 각각 법률과 의학 공부를 그만두고 미술가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뒤샹의 형제들
큰형은 자크 비용이란 이름으로 화가로 활동했고, 둘째 형은 레이몽드 뒤샹-비용이라는 이름으로 조각가가 되었습니다.
두 형은 뒤샹이 자신도 예술을 하겠다고 하자 많은 무시를 했다고 합니다.
이에 뒤샹은 열등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으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동생 쉬잔 역시 쉬잔 뒤샹-크로티라는 이름으로 화가로 활동하게 됩니다.
뒤샹의 아버지는 자식들의 예술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뒤샹은 이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고향 마을 풍경을 습작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특히 모네의 화풍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뒤샹의 다양한 작품 활동
1904년 뒤샹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형이 있는 몽마르트르로 가서 미술 수업을 받았습니다.
형 주위의 예술가, 작가들과 어울리면서 아방가르드 운동의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판화가이자 상징주의 화가인 오딜롱 르동이 자기 작품의 시작점이라고 일컬으며 큰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습니다.
또한 말라르메, 에드거 앨런 포 등의 작품과 상징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상징주의뿐 아니라 입체주의 , 야수주의의 영향도 받았으며 이 시기 뒤샹은 캐리커처를 그리거나 만화잡지에 풍자만화를 그리는 등 작품활동보다는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 듯합니다.
회화작품에 전념하게 된 뒤샹
뒤샹은 작품활동, 말장난, 캐리커쳐, 게임 등을 자신의 루틴으로 지속하는 날들을 반복하다가 1906년이 되어서야 진지하게 회화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뭉크와 고갱의 작품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신화, 종교적인 내용을 주로 그렸으나 특정 화풍을 따라 모방해서 그리는 것은 꺼렸다고 합니다.
혹평으로 고통 받은 뒤샹
1912년 뒤샹은 예술가 활동의 큰 전환점이 될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를 완성했습니다.
당시 뒤샹이 활동 중이던 퓌토 그룹에서 뒤샹의 이 작품을 호되게 비판해 그들과 불화를 겪기도 했고 입체파 양식으로 그린 그림이었으나 입체파 그룹에게도 미래주의적으로 여겨진다며 냉대받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작품의 이름을 바꾸던가 작품을 도로 가져가라고 요청하여 뒤샹은 다시는 이 그룹에 참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게 됩니다.
이 일로 그는 자신의 창의성을 무시하는 사상들에서 모두 벗어나려고 다짐했습니다.
본인들 스스로 아방가르드를 외치면서 폐쇄적인 생각을 가진 그들에게 큰 실망을 했습니다.
이때 그는
“이게 그들이 원하는 거라면 어떤 그룹에도 낄 이유가 없어. 나는 앞으로 나 자신에게만 의지하겠다”
라고 하였으며, 이 작품은 다음 해 뉴욕의 ‘아모리 쇼’에 출품되었고 미국인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뒤샹의 그림을 받아들이며 센세이셔널한 시작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후 뒤샹은 전통적인 회화 미술을 멀리하게 됩니다. 뒤샹의 초기 회화 작품들을 보면 분명 뛰어난 테크닉과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디메이드의 고안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이 젊은 화가는 진보적이지 못한 예술계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규칙에 제약받고 끌려다니는 것을 부정하던 뒤샹은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을 의미하는 말로, 기성품을 만들어낸 최초의 목적에서 벗어나 별개의 의미를 갖게 함으로써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미술 개념)를 고안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미술 제작 방식을 송두리째 뒤집어엎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작품 약식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으며, 산업화로 대량 생산된 물건들도 얼마든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12년 브랑쿠시, 페르낭 레제와 함께 항공 박람회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뒤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회화는 망했어. 저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는 이 말에서 예술가의 기교나 재능에 의존하여 작품을 제작하던 미술에 대한 관념, 미술품과 기성품의 경계 등이 허물어지면서 현대미술이 탄생했습니다.
획기적인 뒤샹의 행보
1913년 그의 첫 번째 레디메이드 작품 <자전거 바퀴>를 제작했습니다.
평범한 나무 의자와 자전거 바퀴를 결합한 작품으로 어디서든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일상 용품과 미술작품의 경계를 무너뜨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성품이라도 예술가가 선택해 조합하고 새로운 창조물이 되면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작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뒤샹은 창작행위의 범주를 넓혀 작품 제작만 창작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예술작품이 될수있다고 사고의 틀을 깬 것입니다.
이런 그의 사상이 하나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약 40여년이 걸린 것을 보면 그 당시로서 얼마나 획기적인 생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스캔들의 주인공 뒤샹
1917년에는 변기를 구입해 'R. Mutt 1917’이라고 서명하고 뉴욕 전시회에 출품했는데 큰 스캔들을 일으키며 20세기 예술의 아이콘으로 꼽히게 되는데 이 작품이 바로 <샘>이라는 작품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뒤샹이 전시 배치위원회 위원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 참여를 허락받지 못했으며 사진작가 스티글리츠의 사진으로만 남았습니다.
후에 자신이 창간한 잡지인 <더 블라인드 맨>에 이 작품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합니다.
-무트 씨가 직접 <샘>을 만들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일상 용품을 선택하고, 그것에 새로운 관점과 이름을 붙임으로써 본래의 사용 가치에 대한 고려가 아닌 그 대상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창조되도록 했다.-
모나리자의 재해석
1919년, 뒤샹은 길거리에서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인쇄된 싸구려 엽서 한 장을 구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고, 알파벳 대문자로 ‘L.H.O.O.Q’라고 적어 넣었습니다.
프랑스어로 ‘엘 아슈 오 오 뀌’라고 읽히는 이 단어는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라는 의미의 ‘Elle a chaud au cul’을 연상시켰습니다.
사소한 장난으로 치부될 수 있는 이것은 기존의 예술에 대한 조롱으로 받아들여지며 많은 논쟁을 일으킵니다.
반예술(Anti-Art) 행위로 받아들여진 이 행위는 천재적인 작가들이 창조한 작품에 대한 무조건 적인 믿음을 깨버리는 행위로 뒤샹이 1914년에 창안하여 고정관념을 부정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다이즘과 결을 같이하지만 다다이즘이 일어나기 수년 전부터 이미 이런 개념을 확립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뒤샹의 막대한 영향력
뒤샹이 미술계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납니다.
그의 작품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미술가들에 의해 재발견되었으며 현대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받으며 입체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뿐 아니라 팝아트, 개념미술, 미니멀리즘에도 영감을 주었으며,
‘예술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성상 파괴주의자’ 라는 찬사를 받으며 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출처-
Marcel Duchamp https://fr.wikipedia.org/wiki/Marcel_Duchamp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 https://ropac.net/news/680-marcel-duchamp-l-invitation-faite-au-regardeur-art-historian-judith-housez-writes-about-marcel-duchamp-s/
<샘> https://www.tate.org.uk/art/artworks/duchamp-fountain-t07573
<L.H.O.O.Q> https://en.wikipedia.org/wiki/L.H.O.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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