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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26. 스티글리츠 - Alfred Stiegl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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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Stieglitz

 

Alfred Stieglitz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스티글리츠

스티글리츠는 1864년 1월 1일 미국 뉴저지 주 호보컨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일계 유대인 이주민으로, 아버지는 남북 전쟁 때 북군 중위를 지내고 모직상으로 성공을 거둔 인물이었습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많은 교육을 받은 그는 뉴욕의 사립학교인 샤를리에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했습니다.

 

 

 

사진에 매료된 스티글리츠

18세 때에는 가족과 함께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베를린 공예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기술공학을 배우다 그해 헤르만 빌헬름 포겔의 사진화학 강좌를 듣고 사진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듬해 그는 포겔의 사진화학 과정으로 전공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웠습니다.

 

 

사진으로 주목받기 시작

22세 때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아마추어 포토그래퍼>가 개최한 콘테스트에서 수상하면서 스티글리츠는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사진은 회화에 종속된 장르로, 회화를 비슷하게 구현하거나 합성하는 기술이 주류였습니다.

 

그러나 스티글리츠는 이에 반대하고 카메라의 기능에 충실한 리얼리즘 묘사를 주장하면서 사진을 독자적인 예술로 발전시켰습니다.

 

 

리얼리즘 방식

사진을 찍기 시작한 초기부터 리얼리즘이 확립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추어 포토그래퍼>에서 입상한 사진들 역시 리얼리즘 방식으로 찍은 것이며, 

 

"그의 사진은 강렬하지 않지만 억지로 효과를 내지 않고 직접적이고 정직하게 찍은 것이다."

 

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상업 사진가 스티글리츠

1890년, 그는 뉴욕으로 돌아와 프리랜서 사진가로 일하면서 상업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듬해 그는 뉴욕 카메라 클럽에 가입하고, <미국 아마추어 사진가>의 편집장을 지냈습니다.

 

 

뉴욕 카메라 클럽의 출범

그러면서 사진을 예술로 인식시키려면 개인 활동보다 집단 활동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하고, 아마추어 사진가 협회와 뉴욕 카메라 클럽을 합병하여 뉴욕 카메라 클럽을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1887년 클럽 기관지 <카메라 노트>를 발행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스냅사진을 예술 사진으로

 

1890년대 스티글리츠는 핸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밤과 낮 혹은 겨울의 뉴욕 거리, 고아 소년 등 뉴욕의 근대 풍경을 스냅사진에 담았습니다.

 

이는 자연에 대한 동경을 담아 풍경을 회화적인 기법으로 찍던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 현실 속 도시로 카메라 렌즈를 돌렸다는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의 다양한 시도

그러면서 그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여 추가적인 렌즈나 합성 없이 현실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다양한 효과를 고안해 냈습니다.

 

그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분위기를 사진에 담기 위해 '결정적 한순간'을 얻으려고 노력한 최초의 사진작가 였습니다.

 

 

예컨대 그는 '다가올 무언가'를 포착하기 취해 3시간 동안 폭설 속에서 기다리기도 했는데, 이때 탄생한 작품이 눈보라를 뚫고 지나가는 마차가 생생히 포착된 <5번가의 겨울>입니다.

 

<5번가의 겨울>

 

사진 분리파의 결성

스티글리츠는 1902년 사진 분리파를 결성하고, 1903년에 <카메라 워크>를 창간하면서 전시회를 주관하고 개인 작품집을 발간했습니다.

 

또한 1905년에는 에드워드 스타이컨과 함께 뉴욕 5번가 291번지에 '사진 분리파의 작은 화랑(Little Galleries of the Photo Secession, 일명 291화랑)'을 열고 현대 미술 작품과 사진 작품을 함께 전시했습니다.

 

 

스트레이트 사진

 

스티글리츠는 이 무렵부터 '스트레이트 사진'을 주창했습니다.

 

이는 회화적인 사진을 얻고자 인위적인 가공을 하는 데 반대하고, 사진의 독자적인 광학적 속성과 기록성을 살려 현실을 그대로 재현해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때문에 '순수 사진'이라고도 표현됩니다.

 

 

오늘날 사진의 시작

 

오늘날 사진이 회화와 분리되어 하나의 예술 매체로 자리 잡은 것은 사진 분리파 활동과 스트레이트 사진의 주창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예술화

 

1903년, <인간의 손>에서 스티글리츠는 철도가 증기를 뿜으며 선로 위를 달리는 순간을 포착하여 도시의 일상적인 주제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인간의 손>

 

스티글리츠의 대표작

 

이런 시도를 거듭한 끝에 1907년 스트레이트 사진의 원조로 평가되는 <삼등 선실>이 탄생합니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삶의 리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포학하여 사실주의 사진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삼등 선실>

 

호화 여객선 카이저 빌헬름 2세의 갑판에서 산책을 하다 찍은 이 사진은 특등실과 삼 등실의 탑승객들을 한 화면에 절묘하게 포착하였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포착된 사진 한 장은 미국 신흥부자와 이민에 실패하고 유럽으로 돌아가는 하층민의 삶을 극명하게 대조하며 당대 미국의 시대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화가 조지아 오키프와의 결혼

 

1924년 화가 조지아 오키프와 결혼한 이후 그녀의 사진을 역 500여 점찍었습니다.

 

오키프를 찍은 연작 인물 사진들은 스티글리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시기에 그는 단순한 다큐멘터리성 작품, 즉 사실주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사실에 대한 은유 및 감정을 담은 작품들을 제작했습니다.

 

 

뉴욕으로 돌아온 스티글리츠

 

1925년 인티메이트 갤러리를 개관하면서 뉴욕으로 돌아왔으며, 1927년에는 아메리칸 플레이스를 개관하여 조지아 오키프, 찰스 데무스 등 신진 미국 화가들이 지속적으로 전시회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한편 뉴욕 풍경 연작을 제작했습니다.

 

 

사진을 예술로!

 

스티글리츠는 사진의 독립과 확장을 위해 카메라로 가능한 모든 기법을 연구했으며, 그러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의 기록성과 예술 작품의 회화성 및 표현주의를 한데 결합시켰습니다.

 

미국의 주요 미술관들은 최초로 그의 사진들을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최선을 다해 삶을 산 스티글리츠

 

그는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통해 죽는 날까지 사진을 예술로 격상시키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자살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했다."

 

이렇게 사진에 대한 열정을 아낌없이 불태운 스티글리츠는 1946년 7월 13일 82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출처-

Alfred Stieglitz     https://en.wikipedia.org/wiki/Alfred_Stieglitz

<5번가의 겨울> https://en.wikipedia.org/wiki/Alfred_Stieglitz#/media/File:Alfred_Stieglitz_Winter_Fifth_Avenue_1892.jpg

<인간의 손> https://en.wikipedia.org/wiki/The_Hand_of_Man#/media/File:Alfred_Stieglitz_-_The_Hand_of_Man_-_Google_Art_Project_(color_corrected).jpg 

<삼등 선실> https://en.wikipedia.org/wiki/The_Steerage#/media/File:Alfred_Stieglitz_-_The_Steerage_-_Google_Art_Projec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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