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nri Matisse
앙리 마티스의 출생과 어린 시절
Henri Emile-benoit Matisse는 1869년 12월 31일 프랑스 북부 르 샤토 캉브레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앙리 마티스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증도 따게 됩니다.
그런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사소한 우연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던 중 맹장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해 누워있는 동안 옆 병상에 누워있던 사람의 권유로 취미로 그림을 베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마티스의 화가로서의 시작
1891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아카데미 쥴리앙을 거쳐 에꼴 데 보자르에 입학하고자 하였으나 들어가지 못하고 장식 미술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일련의 과정 중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게 되는 화가 알베르 마르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루브르 미술관에서 모사를 하던 앙리 마티스를 본 구스타브 모로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제자로 받아주게 됩니다.
예술가 한 명 한 명의 특징을 잘 찾아내 개성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자유분방한 교육을 했던 구스타브 모로 곁에서 마티스는 고전주의 화가들을 공부하게 됩니다.
구스타브 모로는 마티스의 그림과 취향을 찬양하며 마티스가 오롯이 자신의 것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게 됩니다.
1893년, 마티스는 카롤린 조블로와 동거를 시작하고 딸 마르그리트를 낳았습니다.
향후 마르그리트는 마티스에게 있어서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그의 작품을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서 보고 평가해 주는 소중한 조언가의 역할을 해주게 됩니다.
1895년에는 그가 바라던 에꼴 데 보자르에 입학하게 되었으며 화가로서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896년 인상파 화가 카미유 파사로를 만나며 인상파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윌리엄 터너, 존 러셀 등 동료 예술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스스로의 영역을 넓힘과 동시에 본인의 스타일을 찾아가게 되는 좋은 원동력이 됩니다.
야수파의 시작
1899년에는 에꼴 데 보자르는 야간반 조각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평생 60여 점의 조각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1905년부터 그의 ‘야수파’의 시기가 시작되게 되는데 그는 앙드레 드랭이라는 친구를 알게 되면서 프랑스 남부를 여행하며 그곳의 화려한 색채와 빛을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색의 대비를 시도하던 그는 주황과 파랑, 빨강과 초록, 노랑과 보라의 강한 보색 대비와 꿈틀거리는 듯한 역동적인 붓질로 이루어진 작품을 전시하자 일반 대중은 전시된 그의 그림의 야만적인 색채 사용에 충격을 받고 조롱하며 ‘레 포브’(Les Fauves)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레 포브는 야수들이라는 프랑스말로 이 이후 20세기 회화에서 최초의 중요한 ‘이즘’인 포비즘(Fauvism), 즉 야수주의라는 용어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앙리 마티스는 야수파의 선두 주자로 인정받았으며, 뉴욕, 모스크바, 베를린 등에서 개인전을 열만큼 화가로서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피카소와 마티스
1907년 앙리 마티스는 파블로 피카소를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피카소와 마티스는 20세기 미술의 흐름을 바꾸는 게임 체인져였으며 마티스 자신은 야수파라는 단어로 자신을 정의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미술 사조를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편이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마티스는 항상 다양한 요소들을 실험하는 것을 즐겨했습니다. 1908년 마티스는 강한 색채 효과는 억제하는 한편 피카소의 큐비즘을 실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유럽 일주
두 번의 알제리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붉은색의 조화>, <붉은 방>, <춤>, <음악>, <목련꽃을 든 오달리스크> 등은 평면적인 구성에 순수한 색채 대비를 통한 강렬한 이미지로 그의 걸작들 중 여러 점이 이 시기에 탄생되기도 하였습니다.
마티스의 중요한 후원자들 중 한 명이었던 러시아인 세르게이 슈추킨의 의뢰로 그의 저택에 벽화를 그리기 위해 모스크바로 떠나게 되었는데 모스크바를 가는 도중에 수많은 유럽 도시들을 방문하게 됩니다.
니스로의 이주
마티스는 그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주로 파리에서 머물렀으며 1971년 니스로 이주하게 됩니다.
프랑스 남부 리비에라의 니스에서 그의 색감과 붓 터치는 더욱 강렬해졌고 또한 <삶의 기쁨>이라는 작품과 같이 평온하고 행복한 작업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점차 공간이 평면화되고 원근법이 무시되었으며 그림자는 없어지고 형태도 큼직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이는 마티스의 작품을 자유롭고 섹시하면서도 쾌락적인 낙천주의적인 느낌으로 만들어 주었으며, 다양한 영감이 한 곳에 모여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마티스의 새로운 시도
마티스는 나이가 들고 명성을 얻으며 경제적으로도 풍족해졌으나 항상 새로운 시도를 계속했습니다.
1941년 마티스는 십이지장암 수술을 받게 됩니다. 그는 너무 큰 고통 속에 이젤 앞에 앉거나 서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그림을 영영 그리지 못할까 봐 큰 걱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그의 유명한 ‘가위로 그린 소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종이에 물감을 칠하고 이를 잘라 풀로 붙여 작품을 완성시켰는데 이는 침대에 누워서도 조수의 도움으로 가능한 작업이었습니다.
마티스는 조수들이 칠해준 종이를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잘라 캔버스 위에 배치하였는데 이런 새로운 시도를 그는 매우 마음에 들어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하지만 선명한 색과 역동적인 포즈가 살아있는 작품들을 완성해 냈으며 ‘혁신적인’ 그의 실험정신은 가히 당대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티스의 마지막
그는 말년의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지냈으나 그의 창의적인 실험정신은 1954년 11월 3일 니스의 그의 집에서 평화롭게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Henri Matisse https://fr.wikipedia.org/wiki/Henri_Matisse
<La Danse> https://en.wikipedia.org/wiki/Dance_%28Matisse%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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